그레이트 북스를 공부하다

생각 8분
그레이트 북스를 공부하다

지난 10월 초부터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을 모아 놓은 그레이트 북스를 읽고 있다. 내가 처음 그레이트 북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지성 작가의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 때문이었다.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된 로버트 허친스가 고전 읽기를 강조한 이후 2000년까지 시카고 대학 졸업생 중 노벨상 수상자가 자그마치 68명이나 된다며 고전 읽기가 어마어마한 위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지성 작가는 그 책에서 ‘고전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는 식의 주장 — 어떻게 보면 약을 파는 것 같은 — 을 초지일관하는데 그 의견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고전이 그만큼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내가 철학이나 고전에 관해 관심을 가진지는 이미 10년도 더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막연히 ‘소크라테스의 대화편부터 시작해서 시대순으로 유명한 책들을 읽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연대기에 따라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직장이나 가정의 일을 핑계 삼아 ‘고전 읽기’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기에 십상이었다.

다행히 고전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특히 인류의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하고 싶다는 나의 강한 열망이 그레이트 북스 공부를 시작하는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그레이트 북스

브리태니커의 그레이트 북스(https://en.wikipedia.org/wiki/Great_Books_of_the_Western_World)

그레이트 북스에 포함된 책은 대략 100여권이 된다. 그런데 국내 검색 엔진이나 구글에서 한글로 ‘시카고 그레이트 북스’ 등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도서 목록은 보통 144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1년 차부터 9년 차까지 목록이 나누어져 있다. 대학에서 교육했다는데 9년차가 있다는 것이 좀 의아하지 않은가?

오랜 조사 끝에 알게 된 사실인데, 허친스와 애들러를 비롯한 항존주의 교육자들은 1952년 4월 이 운동을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주식회사를 통해 ‘The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라는 세트를 발표했다. 발표 당시 54권이었고 1990년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총 60권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고전이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보다 앞선 1947년에 ‘The Great Books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고 이 단체에서 먼저 ‘Great Books Discussion Readings’라는 시리즈를 발간했다. 바로 이 시리즈가 연도별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어로 번역된 목록과 거의 일치한다.

The Great Books Foundation에서 출간한 세트
The Great Books Foundation에서 출간한 세트(https://www.pinterest.com/pin/289567451031875495/)

그레이트 북스 독서 방법

사실 고전을 공부하는 데 그레이트 북스에 포함된 고전의 목록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해도 상관은 없지만, 연대순으로 정렬된 것보다는 조금 섞여 있는 목록이 더 좋은 것 같아 그 목록을 기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순서는 꼭 목록을 따르지는 않았다. 먼저 읽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다른 연차에 있는 책을 먼저 읽기도 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연차별 목록 안에서 차례를 지켜가며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위의 그레이트 북스처럼 모든 고전을 하나의 세트로 모아서 판매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목록을 보고 해당 도서를 직접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번역서는 보통 여러 개의 출판사를 통해 나와 있고 번역의 질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번역서는 원전을 직접 번역한 것, 완역한 것 위주로 선택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 작품의 경우 천병희 교수님의 번역서를 골랐다. 그 외에는 번역서를 모두 읽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 남겨진 리뷰를 비교해보고 평이 좋은 것을 선택했다. 또한 이미 전자책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굳이 구매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세계 문학 작품은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것을 읽을 것이고 동서문화사나 범우사의 책도 일부 읽게 될 것 같다.

독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목록에 없는 책도 함께 읽고 있다. 그리스 로마 고전이나 철학자들의 책을 읽기 전 시대상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를 함께 읽는 식이다. 현재 읽고 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원래 그리스 로마의 영웅 50인에 관한 비교 열전이다. 그런데 정작 책은 인물별로 장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락을 알고 있어야 이해의 폭이 훨씬 커진다. 그레이트 북스에는 이렇게 고대의 역사를 다룬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통사를 다룬 책이 각각의 책을 연결해 주는 가교 구실을 한다. 역사와 관련된 이 책들을 읽기 전에는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모티머 애들러가 <How to Read a Book>에서 제시한 가장 최상위 읽기 방법인 주제별 읽기(Syntopical Reading)도 가능할 것이다. 애들러는 특히 주제별 읽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핵심 주제 100여 개를 선정해 정리해둔 책도 발간했는데 그게 바로 브리태니커에서 출간한 그레이트 북스의 2, 3권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서는 따로 없는 듯 하지만 그레이트 북스를 읽으며 틈틈이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The Great Ideas - A Syntopicon of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짧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지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끝으로 데카르트의 문장과 함께 나의 의지를 다져본다.

The reading of all good books is indeed like a conversation with the noblest men of past centuries who were the authors of them, nay a carefully studied conversation, in which they reveal to us none but the best of their thoughts.”

– René Descartes, Discourse on Method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