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온도계는 정말 우리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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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온도계는 정말 우리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을까?

교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교실의 이데아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며 예의 바르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질서있는 학급?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소화해야 하고 학급 질서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은 선생님들이 꿈꾸는 교실의 이데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보상 제도나 상벌점 제도를 활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주어지는 보상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에드워드 L, 데시는 그의 저서 Why We Do What We Do(마음의 작동법)에서 수십년에 걸쳐 진행된 심리 실험 결과들을 바탕으로 보상과 처벌보다는 자율성이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물개쇼는 조련사가 주는 ‘물고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느러미로 박수를 치고 공을 받고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물개의 모든 행동이 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물개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보상이 멈추면 동기도 멈춘다.

교실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사탕을 받기 위해 발표를 하는 학생은 사탕이 없으면 열심히 발표하지 않는다. 학급 온도계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좋아서 할 수 있을만한 일에 보상을 주면 내적 동기마저 낮아지기 때문에 보상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는 자발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한편 통제 또한 보상 못지않게 교실의 이데아를 위해 많이 사용된다. 학급/학교 규칙을 비롯해서 교사들이 하는 수많은 말 속에는 통제가 녹아들어가 있다.

  •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받을거야.”
  •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해. 만약 싸운다면 반성문을 쓰게 될거야.”
  • “빨리 자기 자리 주변을 청소하는 게 좋을거야. 선생님 눈에 쓰레기가 보이면 대청소를 할 테니까.”

규칙과 가치가 유기적으로 내면화 되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왜 그런 규칙들을 지켜야 하는지 이해하고 참여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대체로 학생들은 순종하거나 반항하게 된다.

다시 교실 이데아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교실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며 교사의 말에 순종하는 학생들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보상과 통제로 교사가 원하는 모습을 흉내내는 학생들이 앉아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흥미를 느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즐거운 그런 교실을 만들고 싶다. 내적 동기가 충만한,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말한 제3의 동기가 부여되어 ‘몰입’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다.

물론 학생들의 자율성을 극대화시키려면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는 미국의 알트스쿨(altschool) 같은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홈스쿨링을 하면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계신 공립학교에서도 제한적이지만 방법은 있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통제속에서도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 받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리라 믿는다. 언젠가 그런 교실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고 그런 교실이 많아진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도 한 때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 모두가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