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가르고 치다 - 나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교육, 독후감 25분

들어가는 말

안녕하세요, 선생님! 얼마 전 교장선생님께서 저경력 교사 선생님들에게 교육에 관한 책을 한 권씩 읽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은 잘 읽고 계신가요?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교육에 대한 책을 읽고 고민하는 것 만큼은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같이 경력이 짧은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 사실 경력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고민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 그래서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선생님들과 ‘자발적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선배교사로서의 조언이 아닌 동료교사로서의 제안으로, 또 함께 고민할 거리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교사, 가르고 치다(김준산)입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소금별(황정회)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책인데 목차를 살펴보다 마음에 들어서 바로 주문했던 책입니다. 다음 날 밤 늦게 그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새벽 늦게까지 읽다 잠이 들었어요. 이 책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현실을 잘 꼬집고 있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교사로서 고민해야 할 거리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해서 그 중 몇몇 부분을 인용하고 거기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나중에 이 글을 다 읽고 선생님들의 생각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선생님들이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도 볼 수 있다면 좋겠고요.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일 잘하는 교사 vs 수업준비를 하는 교사

이 글을 읽게 될 선생님들의 경력이 대부분 1~3년차이실테니 아래 내용에 대해 몹시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새내기 교사에게 학교는 유토피아입니다. 제게도 그랬지요. 학교는 일종의 이상향이었습니다. 해서 이상향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합니다. 성실과 열정만이 살 길이라 믿지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학교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 새내기 교사에게 학교란 냄비 같은 유토피아입니다. 유리 같은 천국이고, 빨리 식는 첫사랑입니다. (p14-15)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아마 선생님들에게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오래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보통 4~5년차쯤 되면 학급경영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쌓이고 교육자료도 축적이 됩니다. 조금씩 시행착오를 겪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지요. 그리고는 일종의 권태기를 겪게 됩니다. 교육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학교 생활이 슬슬 지겹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중한 학교 업무들을 도맡게 됩니다.

학교는 굴러갑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제아무리 세상이 학교를 욕해도 학교는 굴러갔고 교사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부장교사가 되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학교와 지루하게 엮이는 일을 멈추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도 조금씩 지겨워집니다. 수업보다 행정이 우선 돼야 제 육신이 평온하단 사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문제 없는 학교가 최고의 학교란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p16)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더라도 그것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 정도는 조금 이해해 줄 수 있죠. 그렇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처럼요. 교수-학습에 있어서 학교는 매우 느슨한 조직입니다. 하지만 행정에 있어서는 정반대입니다. 매우 엄격하고 분명하지요. 그래서 업무 처리에 있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미흡한 점이 있으면 이내 '일 못하는 교사' 또는 '무능한 교사'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반면 신속,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는 선생님은 '유능한' 선생님으로 판명나지요.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나는 일 잘하는 교사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교사가 되어야 할까?' 웬만한 의지가 없고서는 우리의 선택은 전자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업 준비를 조금 덜 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종 업무 처리를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우스갯소리로 '일 하다가 짬 날 때 수업을 한다.'고들 하실 정도니까요. 초과근무를 달 때 학교 업무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수업 준비, 학습 자료 제작 등으로 쓰는 것 자체가 껄끄럽게 느껴지는 것만봐도 이는 분명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고민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매우 슬픈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규교사에게는 일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교육 자체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찹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 갓 들어온 선생님들에게 나이스를 알려주고, 공문서 쓰는 법을 알려주고, 에듀파인을 알려줍니다. 청소년 단체를 맡기고 방송을 맡기고 6학년에 배정을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폭력입니다. '나도 신규 때 다 그랬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과 관리자분들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잘못된 문화는 바로 고쳐야 합니다. 저경력 선생님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1정 교사 연수를 받기 전까지는 학교 행정 업무를 맡기지 않게 하는 법이라도 만들고 싶습니다.(저를 교육감으로 ㅎ)

저도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업무측면에서는 도움을 받았을 지언정 교육에 관해서는 그렇다할 조언을 해주는 선배교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교육에 대한 고민보다는 일을 더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후회가 많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것을 깨닫게 되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은 어떠신가요?

경쟁을 부추기는 교사, 아이들을 휘어 잡는 교사

아래는 1학년 수업을 참관하고 나서 이 책을 쓰신 선생님께서 한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박수를 치며 칭찬 했던 수업, 선생님은 왜 마음이 편하지 못했던 걸까요?

관리에 익숙한 아이들은 교사의 손짓 하나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며 자신이 하던 일을 곧바로 멈춥니다. 멈추지 않는 몇몇 아이는 여지없이 레벨 다운이 되어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의 모든 아이들에게 삿대질을 받지요. 해서 아이들은 1시간 내내 칠판을 주목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더 무서운 것은 호기심 당기는 공부를 즉시 멈추는 법을 암암리에 배운다는 사실입니다. 진실된 교육 목적이 자발적 성장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만, 1학년 때부터 길들여진 아이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선택이 공동체에게 피해를 준다는 습속을 몸으로 익히게 되면 자발성은 죄의식이 됩니다. (p60)

1년차 때는 구호도 외쳐보고 종도 쳐보고 여러 가지 주의집중법을 활용해 보았습니다. 수업 중 아이들은 쉽게 집중력을 잃으니까요. 그런데 작년부터는 교실에서 종을 치웠습니다. 주의집중법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행동주의에 입각한 교육의 단적인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행동주의는 나쁘고 구성주의는 무조건 옳다’와 같은 흑백논리로 교실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기계적으로 반복 훈련시키는 것에 염증을 느꼈을 뿐입니다. 교실에서 종을 치운 지 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저는 지금도 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제 말에 항상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요.

주의 집중과 더불어 학교에는 ‘아이들을 잡는 문화’가 있습니다. 저경력 교사가 고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해주고는 합니다.

  • 3월에는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
  • 3월 한 달만 애들을 잡으면 일 년이 편하다.

흔히 아이들을 잘 휘어잡는 교사는 때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저렇게 말을 잘 들을까?’ 신규교사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 하지요. 정말 아이들을 ‘잘 잡는’ 선배교사의 교실에 가면 아이들이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참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저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서는 ‘아이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방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10/4) 정유진(지니쌤) 선생님께서 페이스북과 인디스쿨에 올리신 글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교사 코칭을 하다보면 교사의 내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균형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엄격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어떤 선생님은 엄격한 아버지와 같아져서 아이들과 멀어지고 또 어떤 선생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아져서 아이들이 엉망이 됩니다. 보통은 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지요.자신이 부모로부터 양육받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아들여진 만큼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머니의 자애로움은 한 존재로서 영원한 에너지의 원천이라면 아버지의 엄격함은 그 존재가 세상에 자신의 존재성을 펼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 둘은 사랑이 발현되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이 둘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양육법의 핵심!   
한 사람으로서 그가 느끼는 감정은 수용하라.   
한 공동체 구성원서 그가 하는 행동은 이끌어주라.   
   
어머니의 자애로움 한 사람(인)을 키운다면   
아버지의 엄격함은 한 공동체인(인간)을 키웁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www.indischool.com/index.php?mid=commFreeTalk&document_srl=13957114

이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선생님이라는 권위에 억눌린 아이들에게서는 결코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권위라는 것은 선생님이 엄격하게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권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위(학생)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권위 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주의 집중법이나 ‘아이들 잡기’ 말고도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범위에 따라 작게는 상벌제도, 모둠 활동, 글쓰기 지도, 예체능 지도, 생활지도, 공개수업, 수업참관, 아이스크림 활용 등이 있고 크게는 교과서와 교육과정, 현대 학교 교육 제도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여기서 하나하나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우리 같은 저경력 교사들이라면 더더욱 치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합니다. 앞으로 수십년 간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교사

그런데 고민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민만 해서 나오는 해결책은 크기가 정해져있습니다. 그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선생님으로서 교양과 전문성을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교사에게 부킹은 대단히 힘든 노동입니다. 별다른 보상이 없기 때문에 쉽게 욕망할 수 없는 수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부킹을 통해 학교 바깥을 상상하는 창조력은 재미를 주고 아이들에게는 박수를 받습니다. (...) 이권우는 "지식 습득을 위한 책읽기를 넘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소통을 위한 책읽기를 새롭게 제안"합니다. 부킹은 곧 변화와 소통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부킹은 자아성찰이나 사회적 소통과는 무관하게 학생의 진로와 선생님 진급을 위해 작동하곤 합니다. 책 읽는 선생님이 드문 이유입니다. (...)
'읽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어둡고, 생각하고 읽지 아니하면 위태롭다'는 공자의 말씀을 기억해봅니다. 공자는 부킹하는 선생님이야 말로 배움의 위태로움을 슬기로운 불온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충고합니다. 선생님의 존재 이유가 배움과 생각에 대한 꾸준한 성장이니까요. "교사 자신의 성찰이 학생의 성찰을 돕는다"는 교육 기본 원칙을 준수하자면, 부킹은 곧 교사 의무론이 됩니다. (p40-43)

하지만 처음부터 무작정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될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첫 번째는 선생님 나름의 ‘교육철학’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목표와 지향점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또 목표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흔히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을 어떻게 가르칠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지,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지 그것들을 ‘왜’ 가르치는 지에 대해서는 잘 고민하지 않습니다. - 요즘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보세요. 아마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자 철학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철학 외에 교육 관련 서적들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적인 소양은 교육 활동의 큰 바탕이 됩니다. 우리가 교대에서 배웠던 교육철학, 교육사, 교육심리학, 교육과정, 교육평가, 교육공학, 교과교육론 등 수 많은 교육학 이론들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학교에서 그것을 배울 때에는 맥락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쓸모없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최근 스마트교육 관련 활동을 하면서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교육과정과 교과서라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또 창의성을 억누르고 획일화된 교육을 하게끔 하는 현대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관련 글 보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교육철학이나 교육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맥락’이 생기게 되었지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선생님들 나름의 길이 보일 것이라 100% 확신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출발점은 바로 선생님의 ‘교육철학’ 세우기입니다.

반성하고 실천하는 교사

하지만 교육철학이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다소 이상적이기 쉽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말에만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교사라면 말로만 ‘솔선수범’을 외칠 것이아니라 정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희망을 말하는 교사들의 무지를 꼬집습니다. 그에 의하면 '교사는 자기 학습의 조건이자 계기로만 존재'합니다. 교사는 희망을 위한 능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리만 지켜주면 되는 피동적 존재지요. 가르치는 행위가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는 매우 회의적인 주장이기도 합니다. 희망을 위해 교사는 자리만 지키면 됩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은 스스로 배웁니다. 왜일까요? 교사가 말하는 희망은 말뿐이기 때문입니다. (p. 221)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킬 것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해야 합니다. 적어도 내 책상, 내 자리만큼은 스스로 치워야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빗자루를 들고 청소도 해 봅니다. 심부름을 시켜야 할 때에는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하기 싫은 것처럼 어른들에게 어려운 것은 아이들에게도 어렵습니다. 말로만 도덕을 외칠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먼저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모습, 태도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비록 즉각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계속 보고 생활하는 아이들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반성은 다음의 새로움을 준비하는 영속한 인내입니다. 그 자체가 교육적입니다. 완성보다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바로 반성의 기초입니다. 따라서 교사들에게도 반성문이 필요합니다. 잘못했을 때 쓰는 참회의 반성도 반성이지만, 앞날의 매진을 위한 단절적 고뇌 또한 반성입니다. 단절적 사고가 창조적 연속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자신에게 강요해야 할 교사의 자질속에서 새로운 교사상을 꿈꿔봅니다. 물론 시대를 거역하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먼저 불태워야 하겠지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매일 가르치는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필경 참교사란, 전문이나 특권을 바라지 않고 그 반대로 꿋꿋하게 걸어가는 반시대적 사람입니다. (p51)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인재상으로 ‘열정이 있는 사람’을 꼽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그러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쉽게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많은 요인들이 선생님들의 열정을 금방 식게 만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열정이 없고서는 우리의 교육은 결코 진일보할 수 없습니다.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또 앞을 내다보세요. 선생님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들어가는 말에서 독후감을 ‘자발적으로’ 써서 공유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발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학교 저경력교사 모임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가지만 사실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강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취지는 좋지만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도 하지요.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놀이가 자발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기껏해야 놀이의 억지 흉내일 뿐이다. 자유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놀이는 자연의 진행과정과 구분된다. (...) 어른이나 책임이 있는 인간들에게는 놀이는 도외시해도 무관한 기능이다. 놀이는 여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에 대한 욕구는, 즐거움이 놀이하기를 원하는 한에서만 절실해진다.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놀이는 물리적 필요가 도덕적 의무로 부과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는 임무가 전혀 아니다.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이고,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 하위징아의 놀이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가진 창조성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노동보다는 놀이를 통해 인간은 놀라운 집중력과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즐겁게 하는 일에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봇게 되는 법이다. 보통 사람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즐거웠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습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학교가 많이 힘들고 우리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교육이 그저 ‘노동’으로만 다가올 때 우리의 고통은 배가됩니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삶이 놀이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을까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한 타율적인 삶이 아니라 선생님들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육이 자발적인 놀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담기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면 저는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